방송노조간부 성추행 의혹 파문 확산
노조, "음해다, 배후세력 있다" 반박


김미선/이준희 기자 bangzi@hanmail.net


"바지사이로 손을 넣고, 밀폐된 호텔방에서 껴안고 혀를 집어넣으려 했다면 성추행이 아니라 강간미수입니다. 저는 5천 조합원의 일원으로서 이미 공인의 신분이라고 할 수 있는 K씨의 이번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해명을 듣고 싶습니다....이제 노동조합 집행부와 피해여성들의 진술에 언급된 당사자들은 빠른 시일내에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고 우선적으로 조합원들의 판단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지금 현재 우리 노동조합은 진정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가? 제가 볼 때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그 시금석입니다. 그 결과에 따라 우리 노동조합은, 조직보위 이데올로기로 포장된 마초 근성의 마지막 메카로 남느냐, 아니면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자기치유 능력을 확보한 한국에서 몇 안되는 표리부동의 진보 운동세력으로 남느냐 냉정한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조합원, 2/23)"

지난해 12월 22일, 오마이뉴스는 '한 방송사 노조간부의 성추행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오마이뉴스는 신임노조 간부로 당선된 한 남성이 노조내 여성직원 몇 명에게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이 선거과정에서 제기됐으며, 노조가 자체 진상조사위를 꾸려 성추행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경고'라는 미미한 처리를 했다고 밝혔다. 80여일이 지난 지금, 노조는 당시 불분명하게 처리했던 그 사건 때문에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첫보도 : 방송사 노조의 '성추행 진실' 논란 )

지난해 말 노동조합 선거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조합원들에게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이 사건은 지난 2월19일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가 이 사건을 A4용지 9페이지 분량으로 인터넷(진보넷) 상에 공개함에 따라 노조원들 사이에서 노조 신임간부 K씨의 도덕성은 물론, 노동조합의 운동성까지 위협하는 사안으로 확대됐다.

조합원들은 100인위가 공개한 자료를 토대로 "K씨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자 A, B씨에 대해 K씨를 비롯한 다른 관련자들이 보여준 협박과 회유에 대해서도 진상규명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말 노조선거당시 K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힌 A, B씨는 심리불안과 만성소화불량, 악몽 등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 건과 관련 K씨 등으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소된 상태다.

이중 노조 현 직원이었던 A씨의 경우, 신임노조 출범이후 두 달째 출근을 못하고 '장기휴가' 상태에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자신이 쓸 수 있는 모든 연월차 휴가를 다 쓰고 난 뒤 민주노총의 도움으로 한 달 가량의 '없던 휴가'를 더 낸 상태다.

지난 80여 일간 아무런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던 이 방송사 노조는, 지난 27일 "성추행 의혹 재론에 대한 조합의 입장"이라는 5페이지 분량의 성명서를 사내게시판에 걸고, 본격적인 반박에 나섰다. 성명서는 "노동조합은 K씨에 대한 성추행 의혹은 거짓이라고 판단한다"며 "2월26일 100인 위원회와 A씨, B씨 등을 남부지청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 성명서는 또 "이제 법적인 판단 외에는 진실규명이 불가능하다"며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두 여인'을 이용하고 노동조합을 흔들려는 검은 음모세력들에게도 강력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 글은 28일 저녁 노조홈페이지에도 게시됐다.


"K씨 사건 공개시 회유와 협박 있었다"

100인위원회는 K씨 사건 공개와 관련, "피해자들이 지난 2000년 10월 노조내에서 공식적으로 문제제기한 이후 배후설, 음모설 등의 악의적 소문, 중재를 빙자한 주위인들의 사건 무마 시도, 노조위원장 선거 시기 등을 빌어 문제제기를 무력화 하려는 조직보위의 논리 등을 볼 때 이는 성폭력 사건을 묵인 방조, 조장해왔던 운동사회 성폭력 사건의 전형"이라고 밝혔다.

A씨와 B씨가 100인위에 진술한 내용은 크게 둘로 나뉜다.
95년 가을부터 97년 사이에 K씨에게 성추행 당했다는 정황증거에 대한 진술이 그 한 축이며, 두 번째는 K씨 성추행 폭로 후 노조내부에서 보여준 사건무마 발언과 신임노조 출범후 A, B씨와 A, B씨 주변인들에게 가해진 협박이다.

A, B씨는 "(K씨)사건을 상임위에서 공개한 후 '중재자'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나서서 이 사건을 조용히 덮을 것을 종용했다"며 "'이 건에 대해서 신중히 생각해서 접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 '나라면 이렇게 무모한 행동을 안한다'"는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또 두 여성은 당시 위원장 후보로 나왔던 이모씨로부터 "(K씨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겠다"고 들었으며, 또 한 사내 인사로부터는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 한번만 용서해 줘라, 선물주는 셈쳐라"라고 회유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이중 한 명은 100인위 자료공개 이후 A씨의 친정부모에게 까지 '댁의 딸이 K씨한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던데..'라며 전화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K씨, 사퇴하십시오"

A, B씨의 주장에 동의하는 조합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일부 노조원들은 1월 중순 경 노동조합과는 별도로 조합원 개인들의 모임인 '성추행 의혹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를 구성, 자신들의 실명까지 공개하며 A, B씨에게 제기된 소송 등을 돕고 있다.

공대위의 한 관계자는 "피해여성들이 오히려 고소를 당한 상황이기 때문에 공대위를 구성했다"며 "두 피해여성이 100인위에 공개하는 식으로 호소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2월14일부터 주1회씩 사내게시판에 상황보고문을 내고 있으며, A, B씨를 대신해 소송비용 600여만원을 대납하기도 했다. 또 이 방송사 여성협회도 지난 26일 성명서를 통해 "K간부는 사퇴하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한 여성조합원은 "어떤 여성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말을 거짓으로 꾸며내겠냐"며 "노동조합측은 이 사안을 인권문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방송사 노조의 상급기관인 언론노련과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민언련 등도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K씨 사건과 관련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난해 말 선거당시 위원장 후보였던 이모씨를 통해 K씨 출마포기를 권유했던 것으로 알려진 언론노련의 최문순 위원장은 "(A, B씨의 주장에) 음모나 배후는 없다고 본다"며 "배후가 있다면 선거자체가 배후일 것"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또 "가장 좋은 방법은 K씨가 자진사퇴하는 것"이라며 "내부적으로 자진사퇴를 권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민주노총 여성위원회도 3월 5일 민주노총, 언론노련과 함께 이 방송사 노조에 '간담회'를 제안한 상태다.

한편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이사장 성유보) 등은 26일 오후, 이 방송사 노조에 '공개질의서'를 발송, "K씨의 여성활동가에 대한 성폭력이 사실이라면 K씨는 지금이라도 잘못을 사죄하고 노조 간부직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밝혔으나 답변은 받지 못했다.

"난 성추행 한 적 없다. 이건 음해다. 배후를 밝혀낼 것이다"

"황당하다. 이미 노조에서는 다 끝난 사건을 끄집어내는 의도가 궁금하다. A씨와는 단란주점에 간 사실은 있지만 성추행 같은 일은 없었다. B씨도 마찬가지다. 나는 B씨에게 부산에서 호텔을 잡아준 적도 없고, 호텔방에 찾아가 더듬으려 했던 적도 물론 없다. B씨는 집이 부산인데 뭐하러 호텔에서 자겠냐. 두 여성보다 배후가 더 문제다. 재판에서 모든 일이 밝혀질 것이다."

노조간부 K씨를 둘러싼 성추행 의혹에 대해 K씨와 노조측은 "배후가 있다고 확신한다"는 분위기다.

2월28일 밤10시30분 노조사무실에서 만난 K씨는 "나는 두 여성에게 100% 성추행을 한 사실이 없다"며 "이미 지난해 말 진상조사위와 중앙위원회를 거쳐 검증된 사실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전 집행부와 선거 상대후보측이었던 사람들이 지금 이 사건을 확대하고 있다"며 "진상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공대위'를 꾸린 것이나, 상대후보쪽 참모들이 공대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냐"고 말했다.

K씨는 "이 문제는 두 여성문제라기보다는 노조권력을 잡기위한 기존 노조기득권 세력들의 음모"라며 "지금의 노조는 서울 기득권 세력에 기반을 두지 않은 지역출신 노조인들이기 때문에 상급기관의 도움도 없다"고 주장, 끝까지 싸울 것임을 밝혔다.

노조간부 손모 씨는 "A, B씨의 주장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100인위 공개과정에서 자극적인 표현으로 바뀌고, 확대, 왜곡된 것은 사실인 것 같다"며 "선거에 상대편으로 나왔던 사람들이 공대위를 꾸려 두 여성을 돕겠다며 노조를 뒤흔들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건해결의 실마리 '진상조사위 보고서'는 어디에

사건이 발생한 지 5-7년을 경과한 시점이라는 점과, 사실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미흡하다는 점 때문에 이 사건은 정확한 판단을 하기가 쉽지 않은 일임엔 틀림없다. 또 두 여성은 "이 문제는 K씨의 성추행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반해 노조측은 "노조내 세력 싸움"으로 해석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성추행'이라는 불미스런 사건에 노조간부가 휘말림으로 해서 진실보도를 업으로 하는 방송사 노조로서의 명예훼손과, 운동성을 생명으로 하는 '노조'의 타격도 만만치 않지만, 앞으로 노조가 이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 지가 더 큰 과제다.

사건해결의 고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미 두달전 노조가 공식적으로 발족시켰던 '진상조사위원회'가 당시 정황증거 조사를 통해 작성한 200페이지 분량의 비공개 조사보고서를 공개하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진상조사보고서 원본이 어디에 있는 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노조측은 "진상조사위원들이 폐기처분했다" "어디있는 지 모르겠다"고 하고 있는 반면, 일부조합원들은 "현 노조가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상황이다. 당시 진상조사보고서는 K씨 사건에 대한 진위판단을 내리지 못했지만, 당시 진상조사위원들은 이 자료를 토대로 'K씨 사건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했으며, 배후는 없다'고 판단했었다.

이 방송사 노조의 한 조합원은 "노조는 진상조사위 결과보고서를 조합원들에게 공개해 떳떳하게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