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노조 8대 집행부는 여성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라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 위원회'(이하 100인위)는 최근 KBS 노조 부위원장 강xx가 과거에 직장 동료를 성폭행한 사실이 있다고 폭로하였다. 이에 대해 가해자 강xx는 100인위와 피해자 여성 2인, 이 사실을 보도한 동아닷컴 기자를 모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다(http://bbs.jinbo.net/webbs/index.html?board=fwom). KBS노조의 현집행부인 8대집행부는 이 사건에 대하여 지난 2월 27일 '성추행 의혹 재론에 대한 조합의 입장'(www.kbsunion.co.kr)을 발표하였다. 나는 KBS노조 집행부에게 강부위원장의 성폭행 사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성폭행에 관하여 중요한 몇 가지를 먼저 배울 것을 권하고 싶다.
우선, KBS노조 집행부의 입장글은 논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그들은 강부위원장의 성추행이 "진실이 아니"라고 하면서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사건 발생 시각의 비현실성, 성폭행 이후 가해자에 대한 태도가 피해자들의 진술과는 달리 일상적이었다는 점, 자신의 피해 사실을 부인한 적이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고 있다. 그들은 피해자 여성들이 피해 사실을 부인하다가 어떻게 피해자로 변신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밝혀져야 하는 불분명한 점들이 있다는 건 아직 성폭행의 진실 여부에 대해서는 모르는 상태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노조는 '모른다'를 '안다'로 바꾼다. 그들은 더 많은 조사가 필요하다고 결론지어야 하는 대목에서 근거 없이 피해 사실은 진실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비약해 버린 것이다. 마치 종결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다는 듯이 재론 운운하며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 또한 같은 의미로 적절하지 않다.
강xx의 노조 선거 승리를 성폭행에 대한 심판으로 보는 것 또한 완전히 오류이다. 그들은 무엇에 대한 심판이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는지 스스로도 분명하게 아는 것 같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심판은 성폭행을 했더라도 부위원장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심판을 의미하는가? 노조원의 과반수가 성폭행범을 부위원장에 두는 것에 찬성했다고 본다면 집행부는 강xx의 성폭행 사실을 인정은 하는 것인가? 다른 대목에서의 주장을 보면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강xx의 성폭행 사실이 부인되었다고 보는 것인가? 그런 해석 또한 엉뚱하다. 성폭행 사실을 판단할 자격도 능력도 노조 간부 선거에는 없다. 더욱이 피해자의 동의 없이 그것을 용서할 수 있는 권한 또한 없다. 강xx의 성폭행 의혹이 제기되었는데도 그가 부위원장에 당선되었다는 사실로부터 알아야 하는 것은 그 사건이 심판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성폭행 문제가 대다수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나 사소한 결함으로 취급되는지이며, 따라서 성폭행을 심판하기 위한 오랜 싸움이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선거 결과 자체가 성폭행 사건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가 설명되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성폭행 사건을 이해하려면 해당 사건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성문화를 이해해야만 한다. 성폭행 피해를 당한 여성들에게 가장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은 자신이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것이다.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주장하기에 가장 좋은 때에 그것을 부인했다는 것, 그것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노조 활동가인 여성이, 그 사실로부터 성폭행 주장은 허위라는 판단자의 위치로 올라가기 전에 KBS노조 집행부는 성폭행 피해 사실을 주장하는 것이 개인 여성에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먼저 배우기 바란다. 성폭행 피해 신고율이 2%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 속에 들어 있는 피해 여성들의 두려움과 고통을 헤아려야 한다. 또한 친밀한 관계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은 가해자에 대한 분노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자신을 더욱 비난하고 부정하게 되는 고통을 겪는다. 피해자가 진술과는 달리 일상적인 태도를 보였거나 혹은 친밀하기까지 한 행동을 보였다 해도 그것이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게 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가족 안에서 혹은 친밀한 관계 안에서 성폭행과 학대를 경험하면서 그로 인한 분노와는 일관성 없게도(!) 가해자와 일상적인 관계를 유지하는가. 그래서 여성의 경험을 이해하려는 입장에서 보면 그 대목은 가장 눈물이 난다.
KBS노조 집행부는 두 여인이 이 사건을 다시 문제 삼는 최근의 행보를 같이 했다는 점을 근거로 둘 중에 하나가 거짓이면 둘 다 거짓이라는 이상한 논리도 편다. 많은 성폭행 피해 여성들은 자신의 성폭행 피해 사실의 심각성을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깨닫게 된다. 더욱이 동일인인 가해자와의 싸움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힘을 합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한 사건의 허위가(그들이 주장한 바) 다른 사건의 허위의 근거가 된다는 주장은 아무리 좋게 봐도 억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한 사건의 정황에 관한 정보가 불충분하면서도 강부위원장의 성폭행 사건을 한꺼번에 무마하려는 KBS노조 집행부의 성급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 스스로도 다른 한 사건에 대해서는 더 증거를 모으겠다고 밝히고 있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KBS노조 집행부의 입장글에서 가장 문제인 것은 사실상 그들 입장의 핵심이라고 할 집단주의이다. 그들은 강xx 개인에 대한 공격을 KBS노조, 심지어 KBS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보고 있다. 강부위원장 개인을 8대집행부 전체와 분리시키지 못하는 것도 안쓰럽지만, 8대집행부의 운명을 KBS노조 전체의 운명으로 보는 논리는 아무래도 아전인수다. 더욱이 그것이 KBS 전체에 대한 공격이라니, 좀 심하다. 80년대에 전두환 대통령에게 "물러가라"를 외치던 이들에게 그것은 한국 정부에 대한 공격이자 나아가 한국 국운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KBS노조 집행부의 집단주의적 대응은 강부위원장의 성폭행 사건과는 별개인 노조 내부의 갈등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성폭행 사실 주장을 하면서 그런 사정까지야 알아야 할 이유가 없지만, 피해자들이나 피해자를 돕는 대책위의 몇 인이 설령 그러한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성폭행 사실이 조작된 음모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는 없다. KBS노조의 조직 보위, 엄격하게 말하면 현집행부권력 보위주의는 성폭행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하는 것 자체를 KBS 노조를 무너뜨리려는 정치적 음모와 관련된 것으로 보는 신경질적 반응으로 나아간다. 조직 보위론이 지나치면 비판을 봉쇄하는 반민주를 낳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 하나를 추가하고 있는 셈이다. 노조를 위협하는 것은 성폭행 사건을 문제제기하는 이들이 아니라 성폭행 사건을 완전히 부인하지도 못하면서 강xx부위원장을 지키는 데 운명을 함께 걸어버린 현집행부 자신이다.
KBS노조 집행부는 100인위에게 "선배들이 정말 '피땀흘려' 쌓아온 진보의 발걸음에 더 이상 먹칠을 하지 말라"는 충고도 한다. 그 충고는 KBS노조 집행부가 들어야 할 말이다. 진보운동을 해 왔으면서도 그 운동 속에도 가부장제가 있었다는 것을 비판하고 성찰하는 이들이 많은데, 도대체 KBS노조 집행부가 말하는 진보는 누구의 것인가?
그들은 피해자 주장의 일방성을 문제로 삼으면서 누가 입증의 책임을 져야 하느냐고 묻는다. 법적으로도 성폭행은 피해자에게 입증의 책임이 있다. 피해자는 경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강간을 입증 못하면 화간으로 보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반복해서 낱낱이 되뇌어야 한다. 여성주의자들은 그 과정에서 피해 여성이 또 다시 강간을 경험하게 된다고 비판해 왔다. 폭행의 물적 증거를 입수하기 어려운 경우는 더 힘들다. 아무 증인도 없고 가해자와 피해자만 아는 일에 대해서 누구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가? 이런 경우, 피해자만 피해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도 가해 사실을 반증하지 못한다. 즉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지 못한다. 증거를 대기 어려운 상황에서 피해자에게만 입증의 책임을 돌림으로써 피해 증거 불충분이 피해 사실을 부인하게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가해자를 유리하게 할 뿐이다. 누가 옳은지 모를 때 누구의 편에 서야 하는가? 약자의 편에 서라고, 여성주의자들을 포함하여 소수자의 입장에서 세계를 보려는 사람들은 말한다. KBS노조는 그 글에서 "우리는 아직은 약자인 여성의 인권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인권 존중이 단지 생각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믿는다면 그 말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숙고해 보기 바란다.
성폭행 주장을 음모적 허위이고 조직을 음해하려는 세력들의 작태라고 단정하던 KBS노조 집행부는 글의 말미에서 어조를 바꾸어 이 문제를 법에 호소하여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합리적 주장이지만 무척 슬프게 한다. 슬픈 것은 성폭행 사건은 시효가 지나서 법에 호소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이 그것을 알면서 그런 주장을 한 것이 아닌가 해서. 타인의 상처에 대해서 그들이 그토록 교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강xx가 명예훼손 고소를 하였기 때문에 법적 조사는 이루어질 것이다. 피해 여성들은 원고가 아니라 피고의 자리에서 말해야 한다. 너무 오랫동안 참아왔기 때문이다.
그렇다. 우리는 법적 시효도 넘겨버린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어야 한다. 일본군성노예범죄사건처럼 많은 성폭행 사건이 그러하다. 이 문제에 대한 지상 논란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공론에 부침으로써 성폭행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리고 성에 관한 지식이 얼마나 정치적인 것인지를 배우고 있다. 이러한 토론은 우리 사회의 정의(正義)를 이롭게 함으로써 결국은 모두를 이롭게 할 것이다.
KBS노조 집행부는 강xx의 성폭행이 사실이라면 집단 사퇴로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그럴 만큼 성폭행을 명백한 잘못으로 보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성폭행에 반대하기는 쉽다. 그러나 무엇이 성폭행인지 알기는 어렵다. 반대는 반대 의사와 반대 행동을 모두 의미하는 말이기 때문에 사실상 성폭행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는 채 그것을 반대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무엇에 반대하는지는 비어 있기 때문에 아직 반대는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피해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의 경험을 경청하지 않고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 문제를 보지 않고서는 성폭행이 무엇인지를 알기 어렵다. 성폭행에 대한 반대의 시작은 여성들의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KBS노조 집행부는 판단하기 전에 먼저 여성들로부터 배우라.
글. 이박혜경/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80년대에 학생운동을 했고 [여성의 전화]에서 일하기도 했다. 1990년부터 여성학을 공부했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에서 "여성학," "성과 사랑," "성과 가족" 등을 강의하고 있다. "여성과 사회" 편집위원이며 [한국 여성의 전화 연합] 전문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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