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피해자 진술서
< 피해자1 >
정말 하고싶지 않았다. 내가 당했던 일, 그리고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들 이 모든 것에 대한 아픈 기억을 다시금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진정으로 하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 동안 혼자서 삭이며 시달렸던 죄책감과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가는 가해자에 대한 분노감을 어떤 형태로든 풀어내고, 또 누군에겐가 털어놓고 싶었다. 또 가해자가 가식과 허위에 가득 찬 이중인격을 가진 인물이며, 치졸하기 이를 데 없는 범법자라는 사실을 알려야 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
죄책감도 컸다. 내가 사건이 났던 당시에 사건의 본질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공개적으로 문제해결의 노력을 기울였다면 제2, 제3의 피해자는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미안함이 너무나 컸다. 그래서 공개하기로 결심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기운도 났다. 그리고 우리가 공개하면 가해자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다.
이렇게 어렵게 결정하고 나서, 이 사건을 공개할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조직에 대한 신뢰도 있었다. 그래서 KBS노조의 공개회의 석상에 들어가서 이 문제를 밝히고 본인의 피해를 그나마 조직적으로 해결해 주기를 요청했다. 그러나 모든 믿음은 깡그리 무너졌다. 조직에 대한 신뢰도 사람에 대한 신뢰도. 말만 그럴듯하고 속은 다른 생각을 하고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피해 당시 가졌던 사람에 대한 불신의 폭은 훨씬 커지고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강철구와 기자협회장이던 000와 노조 위원장 후보였던 000 이 세 사람이 우리를 찾아 온 이후, 합의서를 썼다는 허위 소문이 나돌면서 문제가 해결됐다는 인식이 퍼져갈 즈음에는 더욱 고통스러웠다. 아무 것도 해결된 것은 없는데도 사람들은 "그 정도에서 해결돼서 다행이다"는 얘기를 위로랍시고 아무 생각 없이 던졌다. 그리고 이 문제가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해 하는 수많은 기회주의적 인물들을 봤다.
하루하루가 잠들기 힘들고, 한번 잠들면 깨어나는 것이 무섭다. 가끔씩 걸려오는 전화도 받는 것이 두려워 몇일씩 전화기를 끄고 지내기도 한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보다 더한 고통은 없었다. 힘들고 어렵지만 이 길을 같이 가는 사람이 있고, 적어도 혼자는 아니라는 믿음이 그나마 나를 추스리게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한때 훌륭한 선배라 생각했고, 믿음 가는 사람이라고 존경했던 사람에게 당했던 성폭행의 기억과 이후 내가 알고있는 사람들에게 유사한 사례를 들으면서 가졌던 분노와 치떨리는 기억들이 다시금 떠오르기 때문이다.
본인은 95년 KBS노조에서 일하던 당시, 노조 전임자로 함께 근무했던 가해자 강철구가 부산으로 되돌아가고 난 직후에 성폭행을 당했다. 평소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였고, 함께 근무하던 여직원들에게 친절했던 가해자였기에 부산에 왔다 가라는 요청을 아무런 의심 없이 순수한 의도로 받아들였고, 시간을 내서 부산에 혼자 내려갔다.
부산에 도착했을 때 가해자는 당시 출입하던 출입처 사람과 함께 술자리를 마련했고, 해운대 인근의 횟집에서 술과 회 등을 함께 먹었다. 그리고, 가해자는 "숙소를 잡아놨으니 편안히 쉬었다가 올라가라"는 말과 함께 조선비치호텔에 방으로 안내해 주었다. 이때 시간은 저녁 9시경이었다. 그리고 가해자는 돌아갔다. 숙소에 들어섰을 당시 본인은 "정말 좋은 선배이다. 한때 같이 일했던 것뿐인데 참 성의 있는 배려를 해준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10여분이 지난 후 가해자는 다시 방문을 두드렸다. "잠깐만 문을 열어 보라"는 것이었다.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가해자의 손에는 양주가 들려있었다. "호텔에서 중요한 손님이라고 하니까 먹으라고 줬다. 안주도 곧 올라올 것이다"라고 했다. 안주까지 시켜놓고 한잔만 하자는 요청을 뿌리치지 못했고, 방안에서 테이블에 앉아 술을 2-3잔 마셨다. 둘이서만 호텔 방에 있는 것이 편치 않았다. 그리고 특별히 더 이상 할 얘기도 없는 상태였다. 그래서 "피곤하니 이제 그만 가라. 일찍 자고 내일 새벽에 올라가야 한다"고 몇 번 요청한 끝에서야 가해자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때 가해자는 배웅하러 일어서는 본인을 끌어안으며 침대 모서리로 밀어붙였다. 이 때 강압적인 힘에 의해 침대로 밀렸으며, 침대위로 비스듬히 넘어졌다. 가해자는 지속적으로 힘을 가했으며,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몸을 밀어붙인 뒤 강제적인 키스를 시도했다. 입술을 밀착시키고, 혀를 입안으로 쑤셔 넣으려 했다. 얼굴을 강하게 좌우로 흔들면서 저항했으나, 가해자가 본인의 손을 뒤로 묶듯이 잡고 있었으므로 힘으로만 저항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가해자는 나머지 한 손으로 옷 위로 가슴을 주무르고는 바지 벨트 근처로 손을 옮겨갔다. 그러면서 가해자는 본인의 귀에 대고 "괜찮아", "괜찮아"를 연발했다. 너무나 역겨웠으며, 구역질이 나려고 했다. "그만 두라"고 소리쳤다. 한 손이 본인의 바지근처로 내려가는 틈에 묶여 있던 손이 조금 풀려날 수 있었다. 이때를 이용해 다리를 들어 가해자를 밀쳤으며, 손으로 가해자의 가슴을 밀쳐 일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번만 더 그러면 소리를 지르겠다" "이런 행위는 강간이다"고 소리지르며 가해자와 떨어졌다. 곧 방을 나갔다. 본인은 이중 삼중으로 문을 잠그고 놀라고 떨리는 심정을 가누지 못해 방안을 한참동안 서성거렸다.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아 호텔 밖으로 나갔다. 다시 가해자가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으며, 불안하고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필요도 있었다. 또 만약의 경우에 대비해 현금을 좀 더 마련해 둬야 한다는 현실적인 생각도 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현금인출기를 찾았고, 현금을 인출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숙소로 돌아왔으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새벽 4시경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로비로 나오니 가해자가 공항에 데려다 주겠다며 꼭두새벽에 나타났다. 그러나 본인은 배웅을 거절하고 공항리무진 버스를 타고 첫 비행기로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로 돌아오면서 "다시는 그놈을 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가해자가 그 동안 친절하게 대해줬던 것이 떠올랐고, 앞으로 내가 조심하면 아무 일 없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성폭행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에게 숙명처럼 따라붙는 "여자가 조신하게 처신하지 못하니까 그런 일이 있지"라는 질책이 먼저 떠올랐다. 그리고 "오라고 한다고 부산에는 왜 갔어" "호텔 방에 무엇 때문에 들어오라고 했어"라는 질책이 앞설 것 같다는 막연한 불안감도 나 자신에게 아무 말을 못하게 막아섰다. 사회운동을 하고있다는 본인도 기존 사회의 통념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냥 넘어가자는 생각을 했다. 이런 생각이 얼마나 철없고, 나태한 사태인식 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너무나 고통스럽게 확인되었다.
이후에도 간혹 일 관계로 통화를 하거나 얼굴을 볼일이 있었지만 배신감으로 사람에 대한 신뢰는 이미 깡그리 사라진 뒤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나도 잘못한 게 있어"라는 고정관념에 빠져있던 나는 가까이 지내는 것을 의식적으로 꺼리는 수밖에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잘못된 인식과 한순간의 판단의 실수가 얼마나 큰 고통이 됐는지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일이 있고 1년쯤 지나 또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이 피해자 역시 가해자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부산으로 한번 왔다 가라는 청을 받고, 동료와 함께 부산에 갔다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모두 밝힐 수 없으나 이외에도 또 다른 사례가 있었다. 이들 모든 사례들은 너무나 유사한 과정과 경로로 성폭행이 이뤄졌으며, 모두들 "내가 거길 왜 갔을까"라는 자책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비슷한 마음과 심정으로 얘기를 나눴고, 비슷한 결론들을 내렸다. 고통스럽지만 '안보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얘기한 사람만 이상한 사람 취급받는다는 인식도 비슷하게 함께 했다. 이렇게 그냥 넘어간 것이 지금에 와서도 가장 괴롭고 바보스러웠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다.
가해자는 친분을 악용한 상습적 성폭력범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보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내가 피해자인데 왜 고통을 내가 안고 가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미치기까지 수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 사이 동일한 가해자에 의한 성폭행 사례는 쌓여만 가고 있었던 것이다. 본인도 점점 거칠어졌다. 가해자를 언급할 일이 있으면 "그놈은 죽여버리겠어" "그 놈 얘기는 내 앞에서 다시는 꺼내지마" 등의 거친 말들을 입에 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또 다른 피해자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도 이 행렬에 동참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죽을 때까지 안고 간다는 성폭행 피해. 그 고통을 풀고싶고, 풀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시는 이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해자는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최종적으로 KBS를 떠나기를 바란다. 이런 파렴치한이 버젓이 KBS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사회정의를 외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용서해 주라"며 "위원장 후보와 기자협회장을 믿고 한번만 크게 용서하라" "너희들이 하는 말은 순수하게 믿는다" "처음에 문제제기 했을 때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한다"는 말로 우리를 회유했던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지 묻고싶다. "일이 커지면 너희들만 손해"라며 우리를 협박까지 했던 그들은 지금까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묻고싶다.
"선거가 끝나고 우리끼리 문제를 풀자" "내가 풀 것은 다 풀겠다"고 말했던 가해자는 아무런 제재 없이, 아무런 반성없이 활보하고 있다. 또 주변인들의 사소한 식사요청이나 면담 요청 등에도 "같이 밥 먹었다가 성폭행으로 고발 할려구?"라며 우리의 행위를 비아냥거리는 듯한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더구나 피해자가 주변에서 이 말을 듣고있는 상황에서도 말이다.
이 문제를 조직내에서 해결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해 KBS노조의 회의에 출석해 알렸고, 조직적인 해결을 요청했으나 결과는 허사였다. 사건의 해결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됐으며, 우리들은 '배후론' '음모론'에 시달리며 난도질당했다. 과연 어떤 여성이 자신의 성폭행 피해사실을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얘기한다는 말인가. 정치권에서나 나옴직한 음모론과 배후론을 들먹이는 것은 그들이 가지고있는 사고의 틀이 어느 정도인지 확연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공개함과 동시에 또 다른 2차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온몸으로 겪었다.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고, 가해자는 오히려 우리들을 명예훼손과 협박으로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직 잠잠해지지 않고 있다. 현재 가해자는 본인의 성폭행 피해사실을 인지하고 믿고있는 사람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엄청난 배후가 있다" "내가 그럴 사람이냐"고 말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지금도 가해자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떤 치졸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성폭행 사실을 공개한 지난해 10월 이후 본인은 심각한 심리적 압박과 고통을 당하고 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이 모든 것을 다 떨쳐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고 있다. 하루하루 잠드는 것이 쉽지 않으며, 밤에도 문득 깨어 분노에 떨며 잠을 설치고 있다. 사는 게 사는 게 아닌 하루하루가 지속되고 있다. 모든 것을 잊고싶어 다른 일에 정신없이 몰두해 보기도 하지만, 잊을 수 있는 것은 잠시뿐이다. 하루빨리 정상적인 일상을 회복하여, 모든 일을 잊고 지낼 수 있는 시간을 갈구한다.
< 피해자 2 >
97년 당시 성폭행을 당했던 사실을 이제 와서 다시 들춰내야 한다는 사실이 본인에게는 심적으로 매우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여기 저기 조사를 받으면서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는 것은 피해자인 본인에게는 정신적으로 더욱 가중된 고통으로 다가온다.
97년 2월경 전임자(여)와 인수인계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함께 여행을 가자고 했고, 둘은 부산 바닷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평소 강철구와 통화할 때 "부산에 놀러와라, 서울과는 다르다. 와서 회도 먹고, 쉬었다 가라"는 통화를 했던지라 그곳에 그 사람이 있다는 점을 생각해 강철구도 만나볼 겸 부산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강철구의 행동은 평생가도 지워지지 않을 기억을 만들어 주었다. 같이 근무했을 당시에는 여직원들에게 무척이나 자상하고 늘 챙겨주는 고마운 상사였고, 선배였는데 그때의 행동으로 강철구에 대해, 아니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부산에 도착했을 당시 강철구는 콘도와 저녁식사 장소를 미리 잡아 두었고 그의 일정대로 우리는 횟집에서 저녁과 술을 마시고, 2차로 단란주점에서 다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 친구 2명이 해운대에 와 있어서, 내가 강철구에게 합석해도 되겠냐고 묻자 강철구는 "걔들은 걔들끼리 놀라고 해라. 우리는 우리끼리 놀자"며 합석을 거절했다. 미안한 마음으로 친구들을 돌려보냈고, 친구들은 몹시 화를 내며 돌아갔다(친구들은 남자1명, 여자1명이었다. 만약 내 친구가 여자만 있었다면 합석을 하자고 했을지도 모른다).
단란주점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부르는 동안 화장실을 몇 번 다녀왔고, 1시간정도 지났을 때(시간 정확하지 않음) 함께 갔던 사람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강철구는 강제로 키스하려고 했고, 가슴을 만졌다.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함께 갔던 동료가 돌아오자 행동을 멈추고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노래를 불렀다. 그럴 사람이 아닌데... 하며 상황 자체를 그냥 이해하려고만 했다. 그러나 함께 있던 사람이 화장실을 갈 때마다 강철구는 나에게 추악한 행동을 계속했고, 나오기 몇 분전에는 "피부가 탱탱하네..."하며 듣기 거북한 말을 하면서 강제적인 키스와 함께 바지의 지퍼를 내렸다. 순간 화장실 갔던 동료가 들어와 위기를 모면했으나 구역질이 났다. 실수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음흉했다.
정말 용서할 수가 없었다. 몇 년 전에도 함께 일하던 다른 여성동료에게 이런 성추행을 한 적이 있어서 고민하고 반성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때 우리가 얼마나 많이 뛰어다니며 그때의 상황을 모면시켜 줬던가. 그때 바로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 것이 큰 실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 상황으로는 강철구가 부산에서 근무했었고,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몰라, 그저 나와 크게 부딪칠 일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또 같이 근무했던 때의 정도 있고 해서 덮어두려고 했다. 그러나 이후 부산에서의 악몽 같은 기억을 함께 근무했던 선배에게 얘기했을 때, 그 선배로부터 같은 사례가 여러 건 있다는 충격적인 말을 전해들었다. 그러나 이때도 분노가 치밀었으나, 마찬가지로 문제제기를 공개적으로 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작년 10월 중순 강철구가 8대 부위원장에 출마를 한다고 하고, 소문으로는 가장 유력한 당선자라고 알려졌다. 그런 사람이 노조에, 그것도 부위원장직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하고 문제제기를 했으나 내부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는 그 당시 강철구가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에 대한 성폭행을 인정하고 사과할 것이라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던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 중에는 "강철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싸우느냐, 네 이미지에도 좋지 않다"며 격려대신 위협과 협박을 하였고, 조합 내부에서는 도와달라는 말에 서로 말을 하기 꺼려하고, "얘가 나에게 말을 걸면 어떡하나" 하는 눈치였다. 심지어는 위원장이라는 사람이 "같이 있다가 성추행이라고 하면 어떻게 하냐"는 식의 농담을 당사자인 내가 있는 자리에서 서슴지 않고 하였다. 그런 상황으로 인하여 나는 성추행의 피해보다 더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었고, 내가 소속한 곳에서 외면 당하고 있다는 생각에 서러웠다. 몇 번을 울고 또 울었다. 그러나 내가 받고 있는 상처는 조금도 없어지지 않았다. 주변사람들로 인한 더욱 생생한 성추행의 기억 때문에 도저히 회사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그렇게 친하고 좋게 지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러던 중 000 기자협회장이 찾아와 중재안을 내겠다고 했다. 협회장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걱정이 많겠다고 위로하면서 기자협회장인 자신의 신분을 내세워서라도 해결해 보겠다고 했다. 나는 심적으로 많이 지치고 피곤해 있었던 상태인지라 그 말에 귀가 솔깃했다. 하지만 그 중재안이라는 것은 '같이 일하기 도저히 불가능하면 다른 일자리와 다른 보상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기분이 나빴다. 이건 중재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나를 몰아내려는 말이었다. 더 이상 들을 것이 없다고 생각이 되어, 다른 일자리를 구해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계속 이곳에서 일을 하겠다고 했다. 협회장은 "맞아, 00씨가 나가면 안되지"하며 동의를 하면서 "강철구가 출마한다고 해서 당선될 수 있겠느냐, 이번 문제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문제가 있다면 떨어질 것이다. 서로 원수진 것 아니면 좋게 풀라"고 했고, "선물 주는 셈 치고 선거에 나갈 수 있도록 해 줘라. 그리고 강철구가 오늘 서울에 오니까 만나서 잘 풀어봐라"고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고 생각해, 강철구가 만나기를 원한다면 직접 전화를 하라고 말을 하고 돌아왔다.
바로 그날 저녁 기자협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강철구가 와 있으니 만나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만날 준비도 안 돼있고, 저녁때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곤란하다고 했으나 수 차례 전화를 걸어 만날 것을 요청했다. 하는 수 없이 약속을 잠시 미루고 회사 근처의 음식점에서 강철구, 위원장 후보인 000, 기자협회장을 30분 가량 만났다. 그들은 오해를 풀자고 했다. 내가 시간이 없어서 가봐야 한다니까 "오늘 꼭 다시 만나야 한다"고 했다. 중요한 일이 있다고, 시간이 없다고 하자 늦은 시간이라도 괜찮으니까 집 근처로 온다고 했다. 뭔가 풀려고 하는 줄 알았다. 밤 11시 30분쯤 집 근처로 온 세 사람을 만났다. 거기서 위원장 후보는 "모든 게 내 잘못이다. 좀더 신중하게 이야기를 들었어야 하는데. 한번 도와달라. 나를 믿어달라."고 했고, 강철구는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명예에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 가정에까지 모두 알게 되었다. 나 말고 사무처장(위원장 후보)을 봐서 도와달라. 순수한 사람이다. 우리가 나온다고 해도 반드시 당선되는 게 아니지 않느냐. 문제가 있다면 선거가 끝난 후에 다시 개인적으로 이야기하자"고 했다. 그리고 기자협회장은 "용서해 줘라. 평생 원수로 살게 아니지 않느냐. 좋은 게 좋은 거다. 베풀면 반드시 다시 받을 것이다. 좋게 생각해라. 지금은 선거가 겹쳐서 좋지 않다. 받아주면 고소장은 반드시 취하하겠다. 협회장으로서 책임지고 하겠다. 00씨의 신분문제도 여성 협회장과 얘기해서 일하기 불편하지 않게끔 보장해 주겠다. 모두 만족하진 않겠지만 좋게 끝내자. 아주 죽이든지 아님 큰 선물 주는 셈 쳐라. 용서하겠으면 문구 하나를 작성하자. 서로 나쁘지 않은 정도로 해서 작성하자."고 했다. 그래서 용서할 수는 없으나 선거에 나가는 것은 용인해 주는 문구를 작성했다. 회사 내에서 떠돌던 '배후론'과 '음모론' 그리고 지치고 피곤한 상태였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그들이 진정으로 사과할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정말 절절하게 요청했으며, 이 정도의 말이라면 선거가 끝난 후 개인적인 사과라도 할 것처럼 여겨졌다.
그렇게 빌 듯이 찾아와 불쌍하게 용서를 구할 때는 언제고, 선거에 나가는 것을 용인해 주는 문구 하나 작성한 것을 갖고 "얘들이 반성문 썼다. 봐라, 내가 그럴 놈이냐"는 식으로 당당하게 다니는 모습을 보고, 나는 또 한번 상처를 받게 되었다. 또 문구만 써주면 날이 밝는 대로 고소를 취하하겠다던 말도 검사가 휴가중이라는 이유로 아무런 연락도 없이 취하를 하지도 않고 여러 번의 요구와 요청에 의해 약속과는 다른 10여 일이 지나서야 인심쓰듯이 고소를 취하했다. 어찌도 이토록 사람을 상처 주고 이용을 하면서 저리도 뻔뻔할 수 있는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힘없는 내가 더욱 서러워졌다. 이제는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더 힘들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뉘우치기만 한다면 용서해 줄 수도 있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강철구는 오히려 적반하장 식으로 배후설, 음모설을 들먹였다.
노동조합 내부에서는 "강철구 조합원 성추행의혹과 명예훼손에 관한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져 조사를 벌여왔다. 그 결과 중앙위원회 회의 결과로 강철구에게 "경고"라는 아주 미약한 징계가 떨어졌고 강철구는 그 징계마저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또한 그 결과 보고서가 미공개 원칙으로 조사되었다고 하여 피해자인 본인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8대 신임 집행부 중 어느 개인이 보관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토록 강철구의 위치만 보고 쉬쉬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면 미치겠다. 왜 노동조합이 이렇게까지 망가졌는가.
지금 강철구는 8대 정부위원장에 당선이 돼 부위원장직을 너무도 당연시하며 태연하게 근무하고 있고, 그 때문에 본인은 10월부터 지금까지 심각한 신경성 소화불량 및 급성장염을 앓고 있으며, 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장기 휴가중이다.
7대 전 집행부와, 8대 현 집행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번 사태를 노동조합 차원에서 정확하게 풀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들을 설득해 어떻게든 감춰서 KBS노동조합의 오점을 남기지 않으려고만 하고 있다. 정말로 KBS노동조합이 깨끗하고 정의로운 노조가 되려면, 이번 사건부터 깨끗하게 해결해야 한다.
이번 성추행사건으로 본인은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해 제대로 생활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도 다시금 생각이 나 그로 인해 생활의 무기력함까지 생기곤 한다. 본인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으며, 인터넷 신경과 병원 상담을 받아본 결과 우울증이라고 전문의를 찾아가 상담을 해 보라고 한다.
이번 사건이 빨리 정리가 돼서 강철구에게 피해 받은 사람 모두가 억울하고 분함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리고 강철구는 공개적인 사과를 하고, KBS노조는 물론 KBS를 떠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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