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사 노조의 '성추행 진실' 논란


김미선 기자 iosono@ohmynews.com


사실과 진실을 보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한 언론사 노조원들이 노조간부의 성추행 여부에 대한 진상조사를 둘러싸고 내부갈등을 겪고 있다. 최근 위원장 및 집행부를 재구성한 한 공중파 방송사 노동조합이 신임간부의 '과거'를 둘러싸고 출발부터 시원치 않은 발걸음을 하고 있는 것.

신임간부 K씨의 과거가 문제되고 있는 것은 그가 '성추행 전력이 있다'는 주장이 여성 노조원 등으로부터 제기되었기 때문. 이 방송사의 노조는 선거기간 중에 이 문제를 조사할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피해자들의 주장이 신뢰할 만하다'라 자체결과 보고서를 내놓았지만, 노조 '징계위원회'는 K씨를 '경징계' 조치하는 데 그쳤다.

같은 노조 조직인데도 진상조사위원회와 징계위원회가 서로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인 이유는 뭘까. 이에 대해 상당수 조합원들은
징계위의 '경징계 조치'에 반발하고 있으며, 22일 이 방송사 여성협회는 "진상조사 결과를 공개하라"는 성명서까지 내놓았다. 또 여성직원들과 젊은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려는 움직임까지 일고 있는 상황이다.


- 피해여성이 말하는 K씨의 성추행 전력

'사실여부'를 다투고 있는 일들은 95년에서 97년 사이에 벌어진 3∼5건.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A씨의 이야기다. "97년경 같이 저녁식사로 회를 먹고 단란주점에 갔는데 동석한 여자동료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K씨가 나에게 성추행을 시도했다. 내 몸을 더듬고 억지로 키스를 하려고 해서 말렸다. 그렇게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는데도 여자동료가 다시 화장실에 갔을 때 나에게 두세 차례 더 성추행을 시도했다." A씨에 따르면 "K씨가 '화장실에 간 여성을 따라가거나 출장시 호텔방을 잡아준 뒤 한밤중에 찾아와 술을 권하며' 다른 여성들에게도 성추행을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사례들이 노조에 알려진 것은 지난 10월. 노조선거일이었던 11월23일을 한달여 이상 남겨둔 상태였다. 이미 수년이 지난 상태에서, 그것도 선거를 앞두고 피해여성들이 이 문제를 제기한 까닭은 무엇일까.

'피해자' A씨는 이에 대해 "당시에는 K씨와 근무지역도 달랐기 때문에 'K씨와 더 이상 얼굴만 안 보면 되겠지'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는데 K씨가 노조선거에 나온다고 하니 그것만은 막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이 노조의 중책을 맡는 것은 안된다는 것. A씨는 "막상 문제제기를 하려고 하니 피해자가 나만이 아니었다"며 "K씨는 상습적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K씨는 12월 15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는 '성추행 한 사실 없다'고 밝혔다. 대신 K씨는 "사실무근의 내용이 선거 시기에 등장한 것은 누군가 선거전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나를 음해하려는 것"이라며 "결백이 증명될 때까지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주장했다. (K씨는 피해자들이 '성추행'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지난 10월경 '명예훼손'과 '협박'으로 피해자들을 고소했다가 취하하기도 했다.)

그러면 선거는 어떻게 됐을까. 11월말에 있었던 노조 선거는 'K씨가 성추행을 상습적으로 해왔다'와 '선거를 위한 흑색선전이다'라는 두 갈래 주장이 대립되는 속에서 치러졌다. 결과는 K씨가 속한 팀의 당선, 그러나 K씨를 둘러싼 문제제기는 아직 그치지 않고 있다.


- 진실은 무엇인가

11월8일 노조는 이 사건을 중립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중앙위원 3명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1달여간 K씨의 성추행 여부와 피해자들의 주장이 선거전에 이용하기 위한 음모인지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진상조사위원들은 피해자들과, 당시 피해자들로부터 'K씨의 성추행 사실을
들었던' 주변인들을 조사했으나, K씨의 경우에는 '본인이 거부해' 조사하지
못했다고 한다. 선거종료 10여일 후인 12월12일, 진상조사위원회는 중앙위원회를 통해 결과보고서를 제출했다. 핵심내용은 '피해자들의 주장에 대한 실체적 접근을 했으며, 배후설·음모설은 없었다'는 것.
그러나 3일 뒤인 12월15일 열린 노조 징계위원회에서 K씨는 '경고'를 받는데 그쳤다.

K씨의 징계수위를 놓고 중징계인 '정권 6개월(6개월간 조합원 및 간부 자격박탈)'과 경징계인 '경고'가 표결에 부쳐졌으나 9대 14의 결과가 나온 것.
징계위원회의 분위기는 "K씨가 정말로 성추행을 했다면 방송사를 떠나야
한다"는 것이 우세했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과적으로 '경고'를 내림으로 K씨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지 않은 셈이 됐다. 노조는 'A씨의 주장이 사실이고, 배후도 없었다'면서 K씨의 '성추행' 여부에 대해 불분명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징계위원회의 경징계 조치에 대해 여성조합원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노조관계자들은 납득하지 않고 있는 분위기다. 진상조사에 참여했던 한 중앙위원은 15일 당일 "할 말이 없다"라고 심경을 밝혔으며, 한 여성간부는
"피해자들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라고 말했다.

또 22일 여성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조합은 성추행 사실을 인정했으면서도
징계수위가 시말서를 제출하는 경고란 말인가"라며, "노동조합의 징계가 어떠한 과정과 논의를 통해 결정되었는지 공개하고, 가해자를 중징계 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이제 이 문제는 2라운드에 접어들었다. A씨 등 피해자들은 노조의 경징계 결정과 무관하게 'K씨의 성추행'에 대한 문제제기를 계속하겠다는 입장이며, K씨 또한 피해자들과 '배후'를 상대로 법적인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문제가 올바르게 해결되기 위해서는 성추행 공방의 한 가운데에 있는 K씨와 피해자들뿐만이 아니라, 그 동안 이 문제를 '갈팡질팡'한 태도로 대해 온 노조 또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2000/12/22 오후 8: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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