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견 서


우리는 최근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이하 100인위)'가 KBS노조 강철구 부위원장의 성폭행 사실을 공개한 것에 대하여 가해자가 피해 여성 2인 및 100인위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을 접하면서, 이 고소 사건이 여성을 성폭력 피해로부터 보호하려는 공익적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할 필요를 환기시키고자 이 의견서를 제출한다.

1. 한국 사회에서는 최근 10년여 간 여성단체의 차원에서만 아니라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여성에 대한 성폭력 문제의 심각성이 인식되고 이에 대한 법적·사회적 대응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성폭력 발생건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성폭력 근절을 위한 각계의 노력은 여전히 절실히 요청된다. 이러한 필요성을 인정하여 법에서도 성폭력 근절을 위한 노력을 국가의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2. 그러나 우리 사회 성폭력 사건 신고율이 2.2%라는 사실이 보여주듯이 성폭력 피해자를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로 인하여 피해자 여성들이 성폭행 사실을 공개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사회적 환경에 놓여 있다. 이에 더해 성폭행죄에 관한 공소시효 기간이 짧은 법 환경이 성폭행 문제를 과거지사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여성연구자들 및 여성단체들의 주장이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강철구 부위원장의 성폭행 사실이 뒤늦게 공개라는 방식을 통해 밝혀진 것의 의미는 이러한 배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피해 여성 및 100인위의 사건 공개는 이러한 사회적·법적 환경에서 성폭력 근절이라는 공익을 위한 용기와 결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데에 우리는 이해를 같이한다.

3. 강철구 부위원장의 성폭행은 노조 내부 조사를 통해 사실임이 입증된 바 있고, 심지어 다른 피해자가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강철구 부위원장과 KBS 현 노조집행부는 피해자 및 100인위의 성폭행 사실 공개를 '음모설'이라 주장하며 피해자들과 그들을 도우려는 이들을 매도하고 있다. 이것은 성폭행 피해자를 더 비난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풍토에 기대어 성폭행 사실을 은폐하려는 기도이다.

4. 여러 시민·사회운동조직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 활동가들로 구성된 100인위가 강철구 부위원장의 성폭행 사실을 실명 공개한 것도 우리 사회의 사회적·법적 환경에 의해 '추한 소문'으로 그칠 수도 있는 문제를 실체화함으로써, 피해 여성들을 구제하고, 잠재적 피해자를 보호하고, 성폭력 사건 해결에 대한 사회 공동체의 책임을 환기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이에 실명 공개는 강철구 부위원장에 대한 개인적 음모의 발로일 수 없다. 또한 성폭행 가해자의 명예훼손 주장은 피해 사실 입증이 어려운 성폭행 사건의 특성을 악용하여 가해자들이 항상 제기해온 상습적 행위라는 점이 기억되어야 한다.

5. 이러한 정황에서 현재 강철구 부위원장이 피해 여성들과 100인위 등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함으로써 피해자가 오히려 가해자로 호도된 이 상황은 매우 염려스러운 것이다. 성폭행 사건의 사회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본 명예훼손 사건이 성폭행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을 좌절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서는 안 된다. 이에 피해자 및 100인위의 행위가 갖는 공익적 취지는 수사과정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이번 사건은 정치적 정당성으로 인하여 은폐되어 온 운동사회 내의 성폭행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인권적 상황을 가일층 진보시키려는 노력이라는 의미 또한 가지고 있다. 이번 명예훼손 고소 사건에 대한 당국의 처리 결과는 성폭력 사건을 올바르게 처리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 각계의 노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임이 주지되어야 한다. 이에 우리는 강철구 부위원장이 제기한 명예훼손 고소가 기각되기를 기대하며 이를 강력하게 요청하는 바이다.

2001. 5. 2

권 인 숙 (사우스플로리다주립대학 교수; 여성학)
박 혜 경 (「여성과 사회」편집위원)
서 준 식 (인권운동사랑방 대표)
이 숙 경 (웹진 줌마 편집장)
최 보 은 (㈜덱스미디어 이사)

이상 5명, 가나다 순